시속의 명상…하느님나라에 대한 믿음

예수는 그 나라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믿음은 무슨 마력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맺고 자르는 하나의 결단이다.
예수가 호소한 ‘메타노이아’(metanoia) 즉 회개는 정신과 마음의 변화, 
충성의 변화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라, 거기에 마음을 두라
믿음은 자기 삶의 방향의 근본적 재정립이다. 
신앙은 결단이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어떤 타협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의 결여이며, 
그런 신앙은 아무 효험도 없다.

그러나 믿음의 힘은
그것이 굳은 결단이나 확신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믿고 바라는 바가 진리라는 데서 그 힘이 나온다.

하느님 나라가 만일 하나의 환상이라면 
신앙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무기력한 것이리라.
세상에는 강력하지만 환상적인, 우리를 재앙의 낭떠러지로 이끄는 
역할을 해왔을 뿐인 믿음들이 많이 있다.
예수가 설교한 나라가 만일 삶을 위해 참된 것이라면, 
그것이 만일 인간과 인간의 필요에 관한 진리라면,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나라를 믿는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신앙의 힘은 진리의 힘이다.
연민이 없이는 참된 믿음이 있을 수 없다.
예수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던 나라는 사랑과 봉사의 나라다.
사람마다 사람이기에 사랑 받고 존중되는 인간적 형제애의 나라다.
같은 인간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나라를 믿고 바랄 수 없다.

그런 나라를 믿는 신앙이 널리 퍼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도래 자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적이리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선이 악보다, 참이 거짓보다 강함을 믿는 것이다.
결국은 선과 참이 악과 거짓을 이기리라는,
 하느님이 사탄을 정복하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세상에는 선을 지지하는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깊디깊은 욕구로 나타나서 활동하는 힘, 결국에 가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힘,
그런 힘이 엄연히 존재한다.
예수가 만일 그것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 앨버트 노울런 – 함께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