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2014년 여름에 시작 된 후, 벌써 6 년째가 되는 2019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Summer Inter-Religious Retreat)가 지난 달 7월 26일(금)부터 28일(일)까지 뉴욕 업스테이트에 위치한 <원달마 명상수련센터 Won Dharma Meditation & Retreat Center>에서 불교, 원불교, 개신교 교직자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최 되었습니다.

‘이웃종교연합 Inter-Faith’의 ‘취지’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완성도 있게 개발, 실행해야 하는 1차 목표와 각자의 ‘수련회 Retreat’ 용어인 안거수행(불교), 훈련(원불교), 피정(천주교), 수양(개신교) 이라는 수련회의 취지도 잘 살려야 하는 2차 목표, 즉 이들 두 가지 목표를 완성도와 만족도 높게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데 우리들의부족함을 여전히느낍니다.

지난 5년 동안 세계 곳곳의 종교간 연합수련회 프로그램을 찾아 보았지만, 이웃종교 체험 형식의 프로그램 외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비종교적(Non-Religious) 명상수련 프로그램 중에 좋은 것이 있었지만 우리가 단순히 좋은 명상수련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이웃종교간 연합수련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수련회 이어야 하기에 도입이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종교간 연합수련회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찾을 수 없어, 부족함을 알지만, 진지한 애정의 열심으로, 이웃종교 교직자들과 청년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격려가 되었던 것은, 우리의 종교간 연합수련회 취지를 깊이 공감한 한국의 어느 종교연합 그룹에서 우리의 연합수련회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여 공동개최 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7회 째 가 될 내년(2020년)의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때는 한국 내의 어느 종교그룹 청년들의 단체참가 가능성이 있어 참가자들의 양상이 상당히 변화, 발전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기명 설문조사와 마지막 평가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올 해 참가한 청년들의 프로그램 만족도가 이전 5년 기간 동안 보다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희망하기는 이웃종교 연합수련회의 취지가 더욱 확산되고 수련회의 완성도가 높아져 일반 대중들에게도 개방 될 수 있고 여러 곳에서 프로그램 공유를 요청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1. ‘이웃종교 연합수련회’의 화두, 취지, 주요 프로그램, 전체 일정 소개

1) 화두(주제 Theme)

나의 고민 문제, 현실의 어려움 등에 봉착 했을 때 신앙과 수행을 통해서 어떻게 이를 해결, 극복해 가는가?

When I face concerns or worries, as well as difficulties and challenges presented by conditions of my environment, how do I resolve or overcome them through faith and spiritual practice?

올 해도 지난 5년 동안과 같이 이웃종교 청년들이 토의하여 수련회 화두(Theme, 주제)를 정했습니다. 매년 각 종단 청년들이 화두를 두 가지 이상씩 제출하여 제출 된 화두 중 가장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선택합니다. 올 해의 화두는 원불교에서 제안한 화두였습니다.

이번 해의 화두를 이렇게 정한 이유는 우리 종교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현실과 신앙(주로 기독교적 표현), 수행(주로 불교적 표현)이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삶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기준이 자신의 신념, 가치관인데 우리 종교인들에게는 신념과 가치관이 곧 신앙과 수행을 통해 형성되기도 하고, 성숙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념, 가치관,신앙, 수행이 하나가 되어 실행 될 때 성숙한 신앙인, 수행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로의 종교들은 어떠한 신앙과 수행방식으로 고민, 난관들을 해결, 극복해 가는지 실제적으로 서로 배워보기 위해 이 화두를 선택하였습니다.

2)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취지 (The Purpose of Inter-Faith Retreat)

이웃종교의 종교인(교직자 및 청년)들이 서로에 대한 열린 만남 가운데 서로의 신앙과 수행에 대한 직, 간접적 경험과 서로간의 배움을 통해 이웃종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자 함이다. 동시에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적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웃종교와의 만남은 신앙과 구도의 길에 있어서 소중한 ‘도반’을 얻는 길이며 성숙한 구도인, 신앙인이 되는 소중한 수행의 과정이 될 것이다.

The inter-faith meeting (made up of clergy and young adults), with an opened mind and opened heart, seeks to share and learn about each of the four religions’ unique faith, religious practices, and the various personal or spiritual experiences of those committed to engaged  in the inter-faith dialogue. Through this sharing of knowledge and experiences amongst the participants, we strive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and a deeper appreciation for each others’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At the same time, we hope to reflect deeply on our own religious belief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and using different methods, as well as arrive at newfound realizations about our own spiritual practices. Therefore, this inter-religious gathering and meeting of the four Korean-religions (Buddhism, Won Buddhism, Catholicism, Protestant) is one of the first steps in our path towards faith and truth, as it is also an invaluable way towards finding true friendships and discipleship. This will be an important step, as well as practice, towards growing and nurturing ourselves to be more open, understanding, and conscious people of faith.

3) <2019 여름 이웃종교 청년연합수련회> 주요 프로그램

(1)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 – 첫 날 토요일(7/27) 저녁 7시 ~ 8시

4년 째 하고 있는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은 연합수련회 첫 날인 토요일(7/28) 저녁 식사 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 됩니다. 올 해는, 이지은 교무님 인도 아래 원달마센터 주변 능선 길(Track)을 묵언(Silent) 가운데 걷는 선 수행(Walking Zen Meditation)이며 참가자 모두 평화로운 석양의 숲 길이 가져다 주는 아늑함과 무념의 상태를 느낄 수 있어 매우 좋다고 합니다. 올 해 마지막 평가시간에 청년들 대부분이 묵언 행선 시간과 묵언 시간을 늘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내 년에는 청년들의 요청을 반영해야 하리라 생각 합니다.

(2)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108배 – 둘째 날 일요일(7/28) 아침 7시 ~ 8시

6년 전 첫 해부터 프로그램에 포함 되어 있었는데 모두들 매우 좋아하는 시간 입니다. 올 해는 처음 참석하는 조계사의 법성스님의 절에 대한 설명과 인도 아래 묵언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 온 불교와 원불교의 절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면서도 각기 심오하였습니다. 절이란 가장 낮아지는 의미와 참 자기로 돌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생각)와 가슴(감정)과 하지(육체)가 하나로 풀어지는 의미도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묵언수행의 경우, 단순한 침묵이 아닌 자기 안의 모든 생각을 내려 놓게 하고, 입을 닫고 눈과 귀를 열게 해주는 수행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관음(觀音)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기독교의 경우, 묵언수련은 묵언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듣고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타인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 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 합니다. 또한 묵언은 자신의 존재의 심연에 이르게 하여 자신 속에 하느님이 새겨놓은 뜻을 알도록 돕는다고 생각 합니다. 나아가 사랑의 근원 속에 우리를 잠기게 함으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빛과 생명, 충만한 사랑을 제공하게 한다고 이해 하고 있습니다.

(3) 다르마 & 로고스 톡I, II (Dharma & Logos Talk I, II) –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조별 담화와 청년들의 조별 토론 및 발표

청년들은, 첫째 날 <다르마 & 로고스 톡I – 첫 날 오후 3시~5시: 청년들 동일한 질문 하고 교직자들 다원, 다양한 답변듣기>, 둘째 날 <다르마 & 로고스 톡II – 둘째 날 오전10시~12시 청년들의 조별 토론 및 발표> 순서를 갖습니다.

(가) 화두 관련한 질문 (Group Selection among Questions on the ‘Difference’)

올 해는 각 종단 청년들이 섞인 조를 3개조로 편성하였는데 각 조는, 동일한 화두(주제) 아래, 종단 별로 2가지씩 이상씩 미리 제출(아래 총 11가지 질문)한 질문 중 조별로 질문 2가지를 선택해 각 종단 교직자들에게 돌아가면서 동일하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종교가 다른 청년들이 제출한 질문은 질문 안에 이미 깃든 취지, 관심사, 해결 지향점등에 있어 공통성과 차이성이 있는데, 11가지 질문 중 2가지 질문을 고르는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 지향과 성향이 이웃종교 청년들과 무엇이 공통적이고, 무엇이 다른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들 자신의 실존적 질문과 토론을 하는 것이라,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질문을 확정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태도와 과정 자체가 종교간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수용되어 서로의 신앙과 수행방식을 자연스레 존중하고 배우게 됩니다.

질문1

문제를 해결 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과 신앙과 수행이 왜 연관이 되어 있을까?  How come trying to resolve problems/difficulties and applying religious belief & practices are relevant to each other?

질문2

신앙과 수행을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신앙과 수행을 어떻게 시작하고 실행을 해야 하는 겁니까?   While I believe many people can overcome hard times by applying religious belief and practices to their lives. I’m not sure how to do so. How do I start practicing this?

질문3

회사에서 저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특정 동료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을 때 어떻게 신앙, 수행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까?  At the company, my coworkers get harassed by this specific coworker. How can I apply religious belief and practice as the means to resolve this harassment?

질문4

돈을 투자 했는데 다 잃었습니다. 그때 당시 뭐를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습니다. 또한 그때 저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왜 살아야 되는지, 인생이 뭘까, 이럴 때 이런 어려움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I made an investment and I lost it all. At the moment, I wasn’t sure what to do. Also, I asked myself “Why do I live, what is life?”. How do I resolve or overcome this difficulty?

질문5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예전에 일에서 오는 보람이나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을까요?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이 나을까요?   I do not feel the reward or joy of work in recently compare to the past. Is it right to work for this job continually? Is it better to find the other job?

질문6

불평불만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불교에서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고 했습니다. 어떻게 원망할 일을 감사로 돌릴 수 있나요?    There are many things that people complain about. At One Buddhism, we came up with an idea; let’s turn around life about complaining to life about showing gratitude. How can I practice this idea?

질문7

인간관계가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을까요?

Managing a good, healthy relationship among people is difficult. How can I achieve this smoothly and well?

질문8

마음이 힘들고 우울할 때 어떻게 마음의 안정을 얻어 극복 할 수 있나요?

When I feel tired and depressed, how do I pull myself together?

질문9

원하는 일들이 많은데 이뤄지지 않을 때 불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I have many things that I want to achieve. However, I don’t achieve them all and hence I feel unhappy. How do I handle this feeling?

질문10

요즘 사회는 기회주의를 매우 중요시 하는 것 같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필요할 시기에 저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 건지?”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문화 혹은 환경에서는 인간관계를 이렇게 형성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수행을 통해서 이런 현실을 이겨내고 인간관계의 개념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요?

Today’s society appears to value opportunism. Fundamentally, when it comes to building a relationship with another person, people seem to think, “How do I use that person for my personal gain?” We think it is culturally normal in our current social environment to develop relationships for the purpose of gaining some sort of advantage. Hence, we often talk about “networking” instead of building and deepening relationships. How can we overcome this social condition of developing relationships for the sake of using each other? How can our faith and spiritual practice help us to change how we currently (as a society) view human relationships?

질문 11

트라우마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각자가 살아온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

Everyone may hold some kind of trauma from their life, but because we all have lived different lives, it is hard to know about each other’s trauma, and what exactly triggers that trauma.

예: 내가 좋은 의도로 친구를 도와주려 하다가 그 친구의 어떤 트라우마가 재발(?)하게 되었다. 친구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충격과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돼서 나에게 그 감정을 표현한다. 친구는 나의 행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고 하며 오히려 큰 쇼크와 모욕감만 주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친구는 내가 그런 의도로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 친구의 자율성을 존중도 못 해주고 본인의 역량 혹은 능력을 알아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Example: With good intentions, I tried to offer help to a friend. The help that I offered, however, ended up triggering a past trauma for that friend. My friend is seriously triggered to the point of feeling shock. They express emotionally that they were offended by my offer to “help.” The friend understood that my intentions were not in the wrong place. But despite my conscious intentions, my friend felt that subconsciously, I did not have respect for their autonomy nor was I able to acknowledge their capacity and ability to resolve problems on their own.

내가 좋은 의도로 친구를 돕기 위해서 행동을 취했는데 그 행동이 결국 친구에게 해를 끼치게 되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What should I do to resolve a situation in which the “help” I offer ends up having the unintended impact of offending and/or triggering a friend?

나의 무의식 속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신앙과 수행을 통해서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

How can I know what is actually in my subconscious or unconscious? How can my faith and spiritual practice help me to learn what thoughts, feelings, ideas, beliefs exist in my mind?

 

(나)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조별 담화 (Dharma & Logos Talk on the Theme)

각 조는 선택한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돌아 가면서 각 종단 교직자를 찾아가 동일하게 질문하고 즉문즉설 방식의 담화를 나눕니다. 각 종단 교직자들은(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개신교 목사님) 각 조별로 청년들이 와서 하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종교 경전과 전통, 신앙과 수행 등에 근거해 최선의 답변과 담화를 나눕니다. 독특한 것은, 각 종교의 교직자들은 각기 다른 어휘와 다른 개념에 기초해 상당히 다른 답변을 하지만, 청년들은 각 종교마다의 가르침의 깊이와 지혜에 깊이 공감하게 되어 모든 종교에 대한 존중심 과 겸손이 자연스레 우러나 종교간 차별, 배타, 갈등이 얼마나 무의미 한가를 한 자리에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웃종교인들 사이에 각자의 진리와 신앙,수행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내 놓고 담화하는 ‘다르마 & 로고스 톡’,의 의의이고 유익이라 생각 합니다. 곧, 이웃종교 연합수련회의 취지 (이웃종교의 종교인들이 서로에 대한 열린 만남 가운데 서로의 신앙과 수행에 대한 직, 간접적 경험과 서로간의 배움을 통해 이웃종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자 함)를 실현하는 길 이기도 합니다

(다) <각 종교의 ‘경전(Scripture)’에 있는 올 해 ‘화두’와 관련한 다섯 구절들을 비교, 연결 짓는 조별 토의(Group Discussion)>

‘화두’와 관련된 각 종교의 ‘경전’에 있는 구절들 중 연관된 구절, 독자적인 구절 등을 찾고 토의를 통해 각 종교들 진리의 고유성(다른점), 공통성 등을 발견하고 깨달아 자기종교 진리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고 이웃종교 진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경전도 많이 읽은 기회가 없기에 이웃종교 경전을 깊이 있게 읽어 볼 기회는 거의 없는 실정 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제 아래 각 종교 경전이 가르쳐 주는 깨달음을 전문 연구자들인 해당 종교 교직자들을 통해 각 종교 경전을 동시에 읽어 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접하기 힘든 귀중한 기회이기에 이 또한 큰 의의라 생각 합니다.

 <불교 경전 구절>

  1. 비구 보디, 팔정도 (Bhikkhu Bodhi, The Noble Eightfold Path)

인생의 고를 해결하기 위한 진정한 길을 보여주는 가르침에는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고통에 대한 충분하고도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셋째는 고통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가르침 이어야 합니다.

We find three requirements for a teaching proposing to offer a true path to the end of suffering: first, it has to set forth a full and accurate picture of the range of suffering; second, it must present a correct analysis of the causes of suffering; and third, it must give us the means to eradicate the cause of suffering.

  1. Pubbakotthaka Sutta, Saim. S.V.220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설법한 것을 믿느냐?” 사리불이 대답했습니다. “네, 법문이 옳은 줄을 압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믿는 신심이 있어 그리 말하는 것이냐?” 사리불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으로서 믿는 것이 아니라, 저는 분명히 그것이 옳은 줄 알기에 믿습니다.”

The Buddha once asked Sariputta,”Do you believe what I have been explaining to you?” Sariputta answered, “Yes, I see that it is so.” The Buddha asked him,”Are you saying this just out of faith in me?” Sariputta answered,”No, I answered in agreement not because of faith in the Blessed One, but because I clearly see for myself that it is so.”

  1. 대념처경 마음편 (The Greater Discourse on Steadfast Mindfulness Translated by U Jotika and U Dhamminda)

비구여, 탐하는 마음이 일어 날 때, 비구는 이것이 탐하는 마음이구나 자세히 살피고, 화나는 마음이 일어 날 때, 이것이 화나는 마음이구나 자세히 살펴라, 이런식으로 비구는 모든 마음의 실질적인 일어남과 그 원인까지도 사라지는 것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러한 마음챙김은 모든 현상의 근원을 꿰뚫어 볼 수 있게 안내해 준다. 그리하여 모든 욕심과 잘못된 견해들로 부터 자유로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Here, bhikkhus, when a mind with greed arises, a bhikkhu knows, “This is a mind with greed”. when a mind with anger arises, he knows, “This is a mind with anger”.

He dwells perceiving again and again both the actual appearing and dissolution of the mind with their causes. That mindfulness is just for gaining insight (vipassanà) and mindfulness progressively.

Being detached from craving and wrong views he dwells without clinging to anything in the world.”

  1. 숭산선사 법문 중 (Seung Shan Zen Master’s quotes)

나쁜 상황이 곧 좋은 기회이고, 좋은 상황이 곧 나쁜 처지이다

A bad situation is a good situation, a good situation is a bad situation

  1. 앤디 퍼거슨, 중국선 전통 (Ferguson, Andy (2000) Zen’s Chinese Heritage: the masters and their teachings)

혜가가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해 질 수 있을까요?”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네가 불편한 마음을 보여 주면 내가 편안하게 해주마” 혜가가 대답하되,”제가 아무리 마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가 소리 치셨다.”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했네!”

Huike said to Bodhidharma, “My mind is anxious. Please pacify it.”

Bodhidharma replied, “Bring me your mind, and I will pacify it.”

Huike said, “Although I’ve sought it, I cannot find it.”

“There,” Bodhidharma replied, “I have pacified your mind already!”

 <원불교 경전 구절>

  1. 원불교 정전 제2 교의편 제7장 사대강령

사대 강령은 곧 정각 정행(正覺正行)· 지은 보은(知恩報恩)· 불법 활용(佛法活用)·무아 봉공(無我奉公)이니,

정각 정행은 일원의 진리 곧 불조 정전(正傳)의 심인을 오득(悟得)하여 그 진리를 체 받아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 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며,

지은 보은은 우리가 천지와 부모와 동포와 법률에서 은혜 입은 내역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그 피은의 도를 체받아 보은행을 하는 동시에,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함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자는 것이며,

불법활용은 재래와 같이 불제자로서 불법에 끌려 세상 일을 못할 것이 아니라 불제자가 됨으로써 세상 일을 더 잘하자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불제자가 됨으로써 세상에 무용한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그 불법을 활용함으로써 개인·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며,

무아 봉공은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 성의를 다 하자는 것이니라.

The Four Great Principles are right enlightenment and right practice; awareness of grace and requital of grace;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buddhadharma; and selfless service to the public.
As for right enlightenment and right practice, it is to engage in that consummate practice which is free from bias or reliance, excessiveness or deficiency, whenever we make use of our six sense organs of eye, ear, nose, tongue, body, and mind, by gaining awakening to the truth of il-Won, which is the mind-seal rightly transmitted by the buddhas and enlightened masters, and modeling ourselves wholeheartedly on that truth.
As for awareness of grace and requital of grace, it is to put gratitude into practice by deeply feeling and knowing the content of the grace we have received from Heaven and Earth, Parents, Fellow Beings, and Laws, and modeling ourselves wholeheartedly on that Way of indebtedness; at the same time, even if there is a situation in which we might become resentful, it is to respond gratefully by discovering first and foremost that from which all grace derives and giving thanks for that situation.
As for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buddhadharma, it means we should not as in the past be incapable of handling worldly affairs because of being attached to the buddhadharma, but instead be able to handle worldly affairs even better because of being disciples of the buddha. In other words, our aim is that we should not be useless in the world by being Buddhist disciples, but, through our practical application of the buddhadharma, we become useful people who can help individuals, families, societies, and nations.
As for selfless service to the public, it is to devote ourselves with sincerity and dedication to delivering all sentient beings through an altruistic Mahāyāna practice that forsakes thoughts only of ourselves or our own families and self-indulgent or capricious conduct.

  1. 원불교 대종경 제3 수행품 7장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영광(靈光)의 교도 한 사람은 품삯 얼마를 벌기 위하여 예회(例會)날 교당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 하니 그대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제자 사뢰기를 「그 사람이 돈만 알고 공부에 등한한 것은 잘못이오나 만일 그 날 하루의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처자가 주리게 되었다 하오면, 하루의 예회에 빠지고라도 식구들의 기한(飢寒)을 면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나 예회는 날마다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공부에 참 발심이 있고 법의 가치를 중히 아는 사람이라면 그 동안에 무엇을 하여서라도 예회 날을 당하여 비로소 먹을 것을 찾는 것은 벌써 공부에 등한하고 법에 성의 없는 것이라, 그러므로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에도 미리 말하여 둔 바가 있는 것이며, 또는 혹 미리 노력을 하였으되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일호의 사심이 없이 공부한다면 자연 먹을 것이 생기는 이치도 있나니,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린 아이가 그 어머니의 배 밖에만 나오면 안 나던 젖이 나와져서 그 천록(天祿)을 먹고 자라나는 것과 같나니라.」

The Founding Master addressed the congregation at a meditation hall, “I have heard that one of the members of the Yŏnggwang congregation works in the neighborhood of the temple on the day of the regular dharma meeting in order to earn a day’s wages. What do you think about him?” One disciple replied, “It is wrong only to be concerned with money and to ignore practice. But if his parents, or wife and children, would starve but for that day’s wages, then, wouldn’t it be all right for him to relieve his family’s hunger and cold even if he misses the service for the day?” The Founding Master said, “What you say makes sense, but since meetings are not held every day, if he were a person who has a true aspiration regarding practice and deeply understands the value of the dharma, he would have done his best to prepare ahead the daily provisions for that meeting-day. Still to be searching for provisions on the very day of the meeting shows that he is neglectful of his practice and lacks devotion to the dharma. This is already spelled out in the Items of Heedfulness Regarding Temple Visits. Furthermore, if a person tried in advance and still could not prepare enough provisions, there is also the principle that if one practices without one iota of selfishness in one’s mind, then provisions will naturally appear. To give you an example, it is just as when an infant is born from its mother’s womb, previously nonexistent mother’s milk starts to flow and it survives by drinking that Heaven-sent endowment.”

  1. 원불교 대종경 제11요훈품 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수도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니라.」

The Founding Master said, “A practitioner of the Way seeks to know the mind in order to achieve freedom of mind, to understand the principle of birth and death in order to transcend birth and death, and to understand the principle of transgression and blessings in order to control them as one pleases.” 

  1. 대종경 제5인과품 10장

한 제자 어떤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분을 이기지 못하거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네가 갚을 차례에 참아 버리라. 그러하면, 그 업이 쉬어지려니와 네가 지금 갚고 보면 저 사람이 다시 갚을 것이요, 이와 같이 서로 갚기를 쉬지 아니하면 그 상극의 업이 끊일 날이 없으리라.]

A disciple was humiliated by someone and could not overcome his anger. The Founding Master said, “When your turn comes to retaliate, just let it go. If you do so, then that karma will come to rest. But if you retaliate now, then the other person will once again retaliate, and if you each go on retaliating in this manner, there will never be a day when this karma of mutual harm will cease.”

  1. 대종경 제3수행품 33장

문정규(文正奎) 여쭙기를 [경계를 당할 때에 무엇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으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생각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나니, 첫째는 자기의 본래 서원(誓願)을 생각하는 것이요,둘째는 스승이 가르치는 본의를 생각하는 것이요, 세째는 당시의 형편을 살펴서 한 편에 치우침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라, 이 세 가지로 대중을 삼은즉 공부가 항상 매(昧)하지 아니하고 모든 처사가 자연 골라지나니라.]

Mun Chŏnggyu asked, “Facing sensory con-ditions, what broad standards should we apply in making our Choice in Action?” The Founding Master said, “There are three thoughts you should adopt as such standards. First, think about your original vow. Second, think about the original intent of your teacher’s instructions. Third, consider the given circumstances and think about whether you are free from bias. By taking up these three broad standards, your practice will never be obscured and all your responses will naturally be balanced.”

  1. 대종경 제9천도품 8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

The Founding Master said, “A human being’s birth and death is like opening and closing your eyes, inhaling and exhaling, or falling asleep and waking up: there might be differences in how long these take but the principle is the same. Birth and death are originally nondual; arising and ceasing originally do not exist. The enlightened understand it as transformation, but the unenlightened call it birth and death.”

<기독교 경전 구절>

  1. 야고보가 쓴 편지 1장 2절~4절 (야고보서 James 1,2~4) 

내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믿음의 시련을 받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develops perseverance.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1.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10장 13절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0,13)

여러분이 겪은 시련은 모두 인간이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신의가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힘에 겨운 시련을 겪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시련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1.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첫 번째 편지 6장 8절~11절 (디모데전서 1 Timothy 6, 8~11)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꾼인 그대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People who want to get rich fall into temptation and a trap and into many foolish and harmful desires that plunge men into ruin and destruction. 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kinds of evil. Some people, eager for money, have wandered from the faith and pierced themselves with many griefs. But you, man of God, flee from all this, and pursue righteousness, godliness, faith, love, endurance and gentleness.

  1. 누가가 전하여 준 복음서 22장 40절~42절 (누가복음 Luke 22,40~42) – 십자가 죽음 전날 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하시고는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에 떨어져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Jesus said to disciples that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He withdrew about a stone’s throw beyond them, knelt down and prayed, “Father, if you are willing, take this cup from me; yet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1. 누가가 전하여 준 복음서 7장 50절(누가복음 Luke 7,5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Jesus said to the woman,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