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의 명상……오월곡(五月哭)

오월곡(五月哭) ,  김정환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그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

 

그러나 쓰러진 자는 다시 살아 이렇게 외칩니다

그해에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진 자의 거대함

상처투성이 목숨의 찬란함 보았는가 그해에

무엇을 보았는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는

목숨 다해 피 철철 흐르는 붉은 태양 보았는가

 

자유여 가난이여 목숨이여 공동체여

무엇을 보았는가 이 골목 저 신작로에 쌓인 시체더미

그 위로 치솟는

반역이며 총칼의 이빨이며 웃음소리며

보았는가 어둠의 얼굴을 어둠의 정체를

어둠의 개백정을 어둠의 양민학살을

찬란함이여 비린내여 펄펄 살아 뛰는 목숨의 비명소리여

지치고 지친 목숨의 끝

죽음이 끝내 한줌 남은 목숨보다 위대한 시간

쓰러짐이 인산인해로 나뒹구는 피비린내 끓는 학살의 끝

 

그렇다 우리는

결코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우리들 가난의 힘이 스스로 죽창으로 치솟아

푸르디푸른 하늘을 이루는 것 보았다

우리들 쓰러짐이

정의와 간사한 도배들 확연히 갈라놓는 것 보았다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우리들 가난의 공동체여, 짓밟힘이여, 신음소리여

차라리 목놓아 울부짖을

맨땅이 갈라질 함성소리여

아아 그렇다 우리는

피맺힌 굶주림이 스스로 불끈불끈 솟는 근육을 이루는 것 보았다

피맺힌 것은 분노뿐 아니라 사랑뿐 아니라

굶주린 목숨 그 자체인 것 보았다

그것이 백성임을

그것이 우리임을 보았다

아아 피맺힌 자유, 피맺힌 제3세계여 공동체여

피맺힌 평야, 핏발 서린 눈동자여

아아 피골상접이여 사막이여 위대한 싸움터여

 

푸르디푸른 조선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젖가슴 잘리고 대포 총칼에 흐트러진 살점으로

낯익은 거리에 피바다로 흐르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근육을

우리를 배반한 것은 백주의 대낮이었습니다

그 대낮에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던 것입니다

 

은밀한 죄악의 밤조차 진저리쳤던 대낮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