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의 명상……풍경

풍경  ,  도종환

이름 없는 언덕에 기대어 한 세월 살았네

한 해에 절반쯤은 황량한 풍경과 살았네

 

꽃은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고

특별할 게 없는 날이 오래 곁에 있었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않은 세월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중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