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5년 째 맞이한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2014년 여름에 시작 된 후 벌써 5 년째가 되는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2018 Summer Inter-Religious Retreat)>가 지난 7 27()부터 29()까지 업스테이트에 있는원달마 명상수련센터 (Won Dharma Meditation & Retreat Center)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청년들과 교직자들을 중심으로 개최 되었습니다.

올 해의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도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도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했지만, 다행히 지난 5년 동안 해를 거듭 할수록 프로그램 구성이 좀더 짜임새가 있어지고 각 프로그램 내용이 더 충실해져 가고 있음을 연속해서 참가한 청년들의 감상과 평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3년 후에는 일반 관심 있는 분들도 참가 해도 되는 수준의 공개 수련회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조계사 한 보살님께서는 더 수준이 좋아지면 너무 수준 높아져 일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게 된다고 진담 처럼 말씀하셔서 격려가 되었습니다. )

올 해도 이웃종교 청년들 사이에 토의를 통해 수련회 화두(Theme,주제)를 정했는데,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How Can I Understand the Difference of Others?”)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수련회의 주요 프로그램이 3가지라 할 수 있는데 (1)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첫 날 저녁 7~8), (2) 나를 돌아보고 찾는 108 (Meditation 108 Deep Bow–둘째 날 아침 7~8), (3) 다르마 & 로고스 톡 (Dharma & Logos Talk I, II :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화두에 대한 조별 담화와 청년들의 조별 토론 및 발표 – 첫 날 오후, 둘째 날 오전) 입니다.

 

화두의 경우, 청년들이 이렇게 정한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타인과의 다른 견해(입장), 다른 가치관, 다른 종교관, 다른 정치관, 다른 세계관 등으로 인해 그 타인(지인들, 직장동료들, 친구들,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불편함, 배타의식, 갈등, 다툼 등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그 타인과 자신 사이의 ‘다름’를 어떻게 이해하고,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각 종교의 경전과 수행 방식이 전해 주는 진리(깨달음)를 통해 스스로도 성찰해 보고 자기에게 맞는 해결 방식을 찾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대가 나와의 다름’(Difference)이 아닌 틀림’(그름 Wrong) 이라고 인식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확대하여 토론을 하였습니다. 

 

다르마 & 로고스 톡의 경우, 도암 스님께서 매년 느끼지만 청년들의 토론이 매우 생각이 깊어 청년들의 질문과 토론을 통해 크게 배우게 된다고 하실 정도로 토론이 상당히 진지하고 청년 시기의 관념에 빠지지 않고 실제 문제로 고민과 성찰을 깊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년들과 각 종단 교직자들과의 담화와 토론의 의의와 유익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종단 청년들이 모두 섞인 조를 4개조로 편성하는데 각 조는, 동일한 화두(주제) 아래, 종단별로 2가지씩 미리 제출한 질문 총 6가지 중 조별로 질문 2가지를 선택해 각 종단 교직자들을 돌아가면서 동일하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종교가 다른 청년들이 제출한 질문은 질문 안에 이미 깃든 취지, 관심사, 해결 지향점등에 있어 공통성과 차이성이 있는데 6가지 질문 중 2가지 질문을 고르는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 지향과 성향이 이웃종교 청년들과 무엇이 공통적이고 무엇이 다른가를 인식하게 됩니다.그런데 모두들 자신의 존재를 싣고 토론을 하는 것이라 당연히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그런 태도와 과정을 통해 질문을 확정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 자체가 종교간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수용되어 서로의 종교와 신앙수행을 자연스레 존중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또한, 각 조는 각 종단 교직자들을 돌아가면서 찾아가 동일한 조별 선택한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각 종단 교직자들에게 질문하고 담화를 나눕니다. 각 종단 교직자들은(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개신교 목사님)각 조별로 청년들이 와서 하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종교 경전과 전통 그리고 신앙수행 등에 기초해 최선의 답변과 담화를 나눕니다. 독특한 것은 각 종교의 교직자들은 각기 다른 어휘와 다른 개념에 기초해 설명을 하지만 청년들은 각 종교마다의 가르침의 깊이와 지혜에 깊이 공감하게 되어 모든 종교에 대한 존중심이 저절로 우러나 종교간 차별, 배타, 갈등이 얼마나 무의미 한가를 한 자리에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종단 청년들은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개종할 필요도, 이웃종교인을 개종시킬(선교, 포교, 교화) 필요도 없음을 직접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종교)의 신앙수행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이웃종교인의 신앙수행에 대한 존중과 겸손을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종교들이 각자의 진리와 신앙수행을 서로 앞에 정직하고 진지하게 내 놓고 담화하고 토론하는 다르마 & 로고스 톡’,의 의의이고 유익이라 생각 합니다. , 이웃종교 연합수련회의 취지(이웃종교의 종교인들이 서로에 대한 열린 만남 가운데 서로의 신앙과 수행에 대한 직, 간접적 경험과 서로간의 배움을 통해 이웃종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적으로 볼 수 있게 하고자 함)이기도 합니다     

우리 연합수련회의 큰 장점은 장소 입니다. 원달마센터에 오게 된 청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원달마센터에 와 있는 것 자체로 몸과 마음이 정화 되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어도 원달마센터에 와 있는 것 만으로도 연합수련회 목적의 반은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하하하). 특히, 원불교의 UR(United Religion) 정신에 기초해 연합수련회 취지를 한결같이 적극 공유하여 주시고 특급배려를 해 주시는 원달마센터 연타원 원장님과 교무님들께 참가자들 모두 마음 모아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한 가지, 올 해에는 매우 의미 깊은 만남의 시간이 우리 수련회 참가자들에게 주어졌는데, 원달마센터의 터를 직접 정하시고 세우신 원불교의 큰 어른이신 4대 종법사(불교의 경우 종정) 좌산 상사님께서 원달마센터에 방문 중이신데 우리 청년들 수련회 시작 시간에 오셔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참고로 상사님은 전임 종법사님을 높여 부르는 표현이라 합니다).

 좌산 상사님께서 청년들에게 인류 불행의 출발은 다름에 대한 용납성의 부족으로 정치, 이념, 민족, 종교, 나라 간의 갈등과 전쟁이 여기에서 비롯 된다어떻게 다름을 용납하는가 하는 길을 찾는 것이 인류의 숙제이고 종교의 과제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화두로 들고 이웃종교 청년들이 모여 연합수련회를 개최한다 하니 너무도 대견하고 여기에 있는 청년 여러분이 모두 그 길의 선구자라고 큰 격려를 주셨습니다.

올 해 연합수련회는 불교에서 맨하탄 조계사의 도암스님과 청년들 보살님들, 원불교에서 필라델피아 교당 이도일 교무님, 조덕상 교무님과 청년들, 플러싱 교당과 맨하탄 교당의 청년, 원달마센터의 유도성 교무님과 이지은 교무님, 개신교에서 맨하탄 작은자공동체교회의 청년들과 목사 부부 등 36명이 참여 하였습니다. (올 해에도 천주교에서 함께 하지 못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웃종교 연합수련회>를 개최하는 우리의 몸짓이 여전히 소박 하지만 언젠가 취지가 널리 확산되어, 종교간 갈등이 있는 곳에 갈등 해소의 한 근거가 되고, 한 모본이 되고, 종교간 평화와 이 세상 평화를 이루는 씨앗이 되길 계속 희망해 봅니다.

3. ‘이웃종교 연합수련회의 화두, 취지, 주요 프로그램, 전체 일정 소개 

1) 화두(주제 Theme):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How Can I Understand the Difference of Others?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타인과의 다른 견해(입장), 다른 가치관, 다른 종교관, 다른 정치관, 다른 세계관 등으로 인해 그 타인(지인들, 직장동료들, 친구들,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불편함, 배타의식, 갈등, 다툼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그 타인과 나 사이의 ‘다름’를 어떻게 이해하고,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 먼저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고, 이에 관한 각 종교의 경전이 전해 주는 진리(깨달음)를 통해 깊은 성찰을 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In living our lives, we encounter a wide range of tension, difficulties, conflict with other people (people we know, co-workers, friends, family members) due to differences in perspectives, values, religious beliefs, political positions, and worldviews. 

First through introspection, then through the truths revealed by scriptures of each religion, we seek to underst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elf and others. And by understanding the differences between us, we can reflect on the conflicts attributed to those differences and think about possible ways to overcome those conflicts.

  

2)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취지 (The Purpose of Inter-Religious Retreat)

이웃종교의 종교인(교직자 및 청년)들이 서로에 대한 열린 만남 가운데 서로의 신앙과 수행에 대한 직, 간접적 경험과 서로간의 배움을 통해 이웃종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자 함이다. 동시에 자신의 종교와 신앙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적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웃종교와의 만남은 신앙과 구도의 길에 있어서 소중한 도반을 얻는 길이며 성숙한 구도인, 신앙인이 되는 소중한 수행의 과정이 될 것이다. 

The inter-faith meeting (made up of clergy and young adults), with an opened mind and opened heart, seeks to share and learn about each of the four religions’ unique faith, religious practices, and the various personal or spiritual experiences of those committed to engaged  in the inter-faith dialogue. Through this sharing of knowledge and experiences amongst the participants, we strive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and a deeper appreciation for each others’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At the same time, we hope to reflect deeply on our own religious belief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and using different methods, as well as arrive at newfound realizations about our own spiritual practices. Therefore, this inter-religious gathering and meeting of the four Korean-religions (Buddhism, Won Buddhism, Catholicism, Protestant) is one of the first steps in our path towards faith and truth, as it is also an invaluable way towards finding true friendships and discipleship. This will be an important step, as well as practice, towards growing and nurturing ourselves to be more open, understanding, and conscious people of faith.

 

3)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주요 프로그램

(1)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 –  첫 날 토요일(7/28) 저녁 7 ~ 8

3년 연속 하고 있는 <묵언 행선(Silent Walking Meditation)>은 연합수련회 첫 날인 토요일(7/28) 저녁 식사 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한 시간 동안, 원대선(Dathane Turner) 교무님 인도 아래 원달마센터 주변 능선 길을 묵언 가운데 걷는 선 수행(Walking Zen Meditation)이며 참가자 모두 매우 평화로운 석양의 숲 길이 가져다 주는 아늑함과 무념의 상태를 느낄 수 있어 매우 좋다고 합니다.

(2)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108둘째 날 일요일(7/29) 아침 7 ~ 8

5년 전 첫 해부터 프로그램에 포함 되어 있었는데 모두들 매우 좋아하는 시간 입니다. 올 해도 지난 해에 이어 유도성 교무님 인도 아래 일요일(7/29) 아침 기상 때부터 108배 순서에서와 아침식사 전까지 묵언으로 진행 되었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이 한결같이 좋았습니다. 

108배에서 절이라는 것은 가장 낮아지는 의미가 있고 참 자신으로 돌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유 교무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불교와 원불교에서의 묵언수행은 단순한 침묵이 아닌 내 안의 모든 생각을 내려 놓게 하고 입을 닫고 눈과 귀를 열게 해주는 수행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관음(觀音)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 하였습니다. (* 참고로 기독교의 경우, 일반적으로 묵언수련은 묵언을 통해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듣고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 타인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 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 합니다. 또한 묵언은 자신의 존재의 심연에 이르게 하여 자신 속에 하느님이 새겨놓은 뜻을 알도록 돕는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묵언은 사랑의 근원 속에 우리를 잠기게 함으로 우리가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빛과 생명, 충만한 사랑을 제공하게 한다고 이해 하고 있습니다. 이웃종교들 사이에 묵언수행이 갖는 공통점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다르마 & 로고스 톡I, II (Dharma & Logos Talk I, II) –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조별 담화와 청년들의 조별 토론 및 발표

청년들은, 첫째 날 <다르마 & 로고스 톡I (Dharma & Logos Talk I) – 청년들 동일한 질문 하고 교직자들 다원, 다양한 답변듣기>, 둘째 날 <다르마 & 로고스 톡II (Dharma & Logos Talk II)  청년들 스스로 답하며 발표하기> 순서를 갖습니다.  

() <조별로 화두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관련한 질문 선택>(Group Selection among Questions on the ‘Difference’)

청년들은 종교를 혼합하여 4개 조로 만든 후, 조별로 청년들 스스로 만든 많은 질문 중에 2 가지 질문을 골라 종교 별로 따로 자리를 하고 있는 교직자들을 순회하며 즉문즉설의 형식으로 담화를 진행 합니다.

질문1

뉴욕에 살다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출퇴근길에 여러가지 이유로 마주치며 언짢은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으로 매번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언짢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질문2

뉴욕은 또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평화롭게 공존하는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종, 종교, 성별 등과 관련한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수면위로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떠오른 모습입니다. 예를 들자면 콜로라도에서 제빵사가 종교적인 양심을 이유로 동성애자 부부에게 서비스를 거절 했다가 소송이 벌어져 법적인 해석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또 뉴욕에서는 큰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양심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양심에 충돌 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질문3

너무 다른 상대로 인하여 마음이 요란했을 때, 그 순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질문4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내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질문5

타인(직장동료)의 관점, 일하는 방식이 이해는 되지만 동의가 되지 않을 경우, 서로 이해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서로(상대에게나 나 스스로에게) 이해를 강요를 하지 않으면서 이해점(합의점)을 찾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까?

질문6

타인(내 친구)의 행동이 내 관점에서 잘못(wrong not different) 되었다고 판단 되나 친구는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겁니까?

() 청년들의 교직자들과의 조별 담화

이 조별담화의 시간에는 각 종단 교직자들은 자기 종교의 관점에서, 자기 종교의 개념과 어휘를 사용하면서 답변을 하기에, 답변 자체가 다양하고 다원적이게 됩니다. 따라서 청년들은 다양, 다원한 답변들을 기초로 토론을 통해 공통된 답변도 찾고 각기 독특한 답변도 찾으면서 이를 기초해 스스로 깨달음 얻어 갑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조별 발표를 통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각 종교의 경전에서 화두(Theme)와 관련된 다섯 구절들을 수련회 전에 종단별로 미리 발췌해 수련회에서 설명, 비교, 이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 <각 종교의경전(Scripture)’에 있는 ‘다름’과 관련한 다섯 구절들을 비교, 연결 짓는 조별 토의(Group Discussion)>

각 종교의경전에 있는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와 관련된 다섯 구절들을 교직자들과 청년들이 토의를 통해 미리 발췌해 와 이웃종교 경전들의 구절들과 비교하고 유사한 가르침은 연결 지어 보고 연결이 안 되는 각 종교만의 독특한 가르침은 그것대로 배워보고 이해해 보는 이웃종교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하고 의미 깊은 프로그램입니다.

A. 불교 경전 구절 –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에 대한 불교 경전 관련 구절

1. 상윳타 니까야 또는 상응부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간들 자기보다 소중한 것은 볼 수 없다. 그와같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도 스스로는 소중하다. 그러면 스스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남 또한 해쳐서는 안된다. 

2. 자애경Metta Sutta

유익한 일에 능숙하여 적정의 경지를 이루려는 이는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며, 온순하고 부드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만족할 줄 알고 공양하기 쉬우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거만하거나 탐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슬기로운 이가 나무랄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안락하고 평화로워 모든 중생 행복하기를! 살아있는 생명이면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비대거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모든 중생들 행복하기를! 서로 속이지도 말고 얕보지도 말지니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 대해서도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남의 고통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목숨으로 보호하듯 모든 생명을 향해 가없는 자애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또한 일체의 세계에 대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무량한 자애를 닦아야 합니다. 서거나 걸을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을 잊지 않고 확립하는 이것이 거룩한 마음가짐입니다. 사견에 빠지지 않고 계행과 정견을 갖추어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면 다시는 윤회의 모태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3. 중국 선종 제 3 조인 승찬대사의 신심명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현묘한 뜻을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The Great Way is not difficult for those who have no preferences. When love and hate are both absent everything becomes clear and undisguised. Make the smallest distinction, however, and heaven and earth are set infinitely apart. If you wish to see the truth then hold no opinion for or against. The struggle of what one likes and what one dislikes is the disease of the mind. While the deep meaning is misunderstood, it is useless to meditate on Rest.

4. 중국 선종 제 6 조인 혜능대사의 설법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들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功德)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대사

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

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으니라.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內見佛性外行恭敬).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Lord Wei asked, “The doctrine Your Reverence has preached—it must be that of Great Master Bodhidharma?” The master said, “So it is.” Wei asked, “I have heard that when Bodhidharma first taught Emperor Wu of the Liang, the emperor asked, ‘Throughout my entire life I have constructed monasteries, had monks ordained, and held vegetarian feasts. What merit is there in these?’ Bodhidharma said, ‘In fact, these are without merit.’” [Wei said,] “Your disciple does not understand the principle of this, and I ask you to explain it for me.” The master said, “‘In fact, these are without merit’—do not doubt the words of the former sage. Emperor Wu was heterodox in mind and did not understand the correct Dharma. To build monasteries, have monks ordained, and hold vegetarian feasts is to seek blessings, but one cannot convert blessings into merit. Merit exists within the dharmakāya, not within the cultivation of blessings. The master also said, Seeing the nature is effort, and universal sameness is virtue. To be without stagnation in successive moments of thought, to always see the fundamental nature, [to possess] the wondrous functioning of the true and actual—this is called ‘merit.’ To be humble in the mind within is ‘effort’; to practice ritual without is ‘virtue.’ For the self-nature to establish the myriad dharmas is ‘effort’; for the mind-essence to transcend thoughts is ‘virtue.’ To not transcend the self-natures is ‘effort’; for one’s responsive functioning to be undefiled is ‘virtue.’ If you would seek merit and the dharmakāya, just rely on this, and [you will create] true merit. Those who cultivate merit must be without disparagement in their minds but always practice respect for all. Those whose minds always disparage others will not eradicate their own [false views of the] self and are themselves without ‘effort.’ [Those who consider the] self-natures to be empty and false are themselves without ‘virtue.’ It is only because they consider themselves to be great that they always disparage everyone else. “Good friends, to be without any suspension of one’s continuousthoughts [of inner humility, etc.] is ‘effort’; for the mind to practice universal directness Number Three: Questions 38 is ‘virtue.’ To cultivate the nature oneself is ‘effort’; to cultivate the body oneself is ‘virtue.’ “Good friends, merit must be seen within the self-natures, it cannot be sought in donations and offerings. Therefore, blessings and merit are different. Emperor Wu did not understand the truth of this, it was not that our patriarch [Bodhidharma] was wrong.”

5. 중아함경 중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 Araavibhaga Sutta from Madhyama Āgama)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 하고 또는 그르다고 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He should not insist on local language. He should not override normal usage.” So it was said. And with reference to what was this said? And how does there come to be 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overriding of normal usage? Here, bhikkhus, in different localities they call the same thing a “dish” (pāti) or they call it a bowl (patta) or they call it a vessel (vittha) or they call it a saucer (sarava) or they call it a pan (dhāropa) or they call it a pot (poṇa) or they call it a “mug” (hana) or they call it a “basin” (pisīla). So whatever they call it in such and such a locality, he speaks accordingly, firmly adhering to and insisting on that, Only this is true, anything else is wrong.” This is how there comes to be 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overriding of normal usage. And how does there come to be non-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non-overriding of normal usage? Here, bhikkhus, in different localities … they call it a “basin” (pisīla). So whatever they call it in such and such a locality, he speaks accordingly without adhering, (thus): These Venerable Ones, it seems, are speaking with reference to this. This is how there comes to be non-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non-overriding of normal usage. So it was with reference to this that it was said, “He should not insist on local language. He should not override normal usage.”

Here, bhikkhus, 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overriding normal usage is a state beset by pain … with conflict. Here, bhikkhus, non-insistence on local language and non-overriding of normal usage is a state without pain without vexation, without despair and without fever, and it is the right way; therefore it is a state without conflict. 

B. 원불교 경전 구절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에 대한 원불교 경전 관련 구절

1. 정신 수양의 요지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니라.

“Spirit” (chŏngsin) means that state in which the mind, being clear and round, calm and tranquil, is free from a tendency toward discrimination and a penchant toward attachment. Cultivating (suyang) means nourishing that spirit which is clear and round, calm and tranquil, by internally letting go of a tendency toward discrimination and a penchant toward attachment and externally not being enticed by distracting sensory conditions. 

2. 교의 15

대종사 봉래 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 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을 모르는가.」그 부부 여쭙기를「산 부처가 어디 계시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그들이 다시 여쭙기를「어떻게 공을 드리오리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이 불공할 비용으로 자부의 뜻에 맞을 물건도 사다 주며 자부를 오직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 주어 보라. 그러하면, 그대들의 정성을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나리라.」그들이 집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그들이 다시 와서 무수히 감사를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實地佛供) 이니라.

Once, while the Founding Master was residing at Pongnae Hermitage, an old couple was passing by and commented that their daughter-in-law was so ill-tempered and unfilial that they were on their way to Silsang Monastery to make a buddha offering about the situation. Upon hearing their problem, the Founding Master said to them, “How is it that you know to make a buddha offering to the buddha image but not to the living buddha?” The old couple asked, “Where is the living buddha?” The Founding Master replied, “The daughter-in-law who lives at your home is the living buddha. Since she is the one with the prerogative to be either filial or unfilial, why don’t you try making an offering to her, first?” They asked, “How should we make such an offering?” The Founding Master answered, “With the money you were going to use for the buddha offering, buy her a gift she would appreciate and treat her with the same respect you would the Buddha. Then, depending on how sincere you are, the effect of your buddha offering will appear.” When the couple returned home, they did as they were told and ultimately, in a few months, she indeed became a filial daughter-in-law. The old couple returned to the Founding Master and thanked him over and over again, and the Founding Master said to his disciples sitting beside him, “This is a pragmatic buddha offering that directly targets the specific object of transgression and merit.”

3. 요훈품 16

세상에 두 가지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니, 하나는 제 마음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제 마음대로 쓰려는 사람이요, 둘을 제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까지 간섭하다가 시비가운데 들어서 고통받는 사람이니라.

The Founding Master said, “There are two types of foolish persons in this world. The first are those who, though unable to use their own minds as they wish, try to use others’ minds as they wish. The second are those who, though unable to handle their own affairs, meddle in others’ affairs and suffer from getting involved in quarrels.

4. 요훔품 33

중생들은 열번 잘해준 은인이라도 한 번 만 잘못하면 원망으로 돌리지마는 도인들은 열 번 잘못한 사람이라도 한 번만 잘하면 감사하게 여기나니, 그러므로 중생들은 은혜에서도 해만 발견하여 난리와 파괴를 불러 오고, 도인들은 해에서도 은혜를 발견하여 평화와 안락을 불러오나니라.

The Founding Master said, “Even though a person has at one moment committed unwholesome acts, if he or she genuinely repents and accumulates merit, the unwholesome energy in his or her body will dissolve, brightly opening the road ahead. Even though a person has at one moment accumulated wholesomeness, if that person has resentment in his or her heart or the intent to hurt others, unwholesome energy will enwrap him or her, darkly obscuring the road ahead.

 5. 요훈품 34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선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은 악으로 세상을 깨우쳐서, 세상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에는 그 공이 서로 같으나, 선한 사람은 자신이 복을 얻으면서 세상일을 하게 되고, 악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 세상일을 하게 되므로, 악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하나니라.

The Founding Master said, “A wholesome person teaches the world through his wholesomeness, but the unwholesome person awakens the world through his unwholesomeness. The service of teaching and awakening the world is the same, but a wholesome person works for the world while gaining blessings for oneself and an unwholesome person does the same while creating transgressions for oneself. Thus, we should pity rather than hate the unwholesome person.”

 

C. 기독교 경전 구절 –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 경전 관련 구절

1. 창세기(Genesis) 13, 8 9

13: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13:9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13:8 So Abram said to Lot, “Let’s not have any quarreling between you and me, or between your herdsmen and mine, for we are brothers.13:9 Is not the whole land before you? Let’s part company. If you go to the left, I’ll go to the right; if you go to the right, I’ll go to the left.”

2. 디모데 전서(First Letter to Timothy) 6, 3 6 & 후서(Second Letter to Timothy) 2, 23 25

6:3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경건한 생활 원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6:4 잔뜩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쓸데없는 질문과 토론에만 미친듯이 열중합니다. 그런 데서 시기와 다툼과 비방과 못된 의심과 6:5 분쟁이 생깁니다.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종교를 한낱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쟁이 있게 마련입니다. 6:6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크게 유익합니다.

6:3 If anyone teaches false doctrines and does not agree to the sound instruc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o godly teaching,6:4 he is conceited and understands nothing. He has an unhealthy interest in controversies and quarrels about words that result in envy, strife, malicious talk, evil suspicions6:5 and constant friction between men of corrupt mind, who have been robbed of the truth and who think that godliness is a means to financial gain.6:6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2:23 어리석고 유치한 논쟁을 피하시오. 그대도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2:24 주님의 종은 다투 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2:25 또 반대자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2:23 Don’t have anything to do with foolish and stupid arguments, because you know they produce quarrels.

2:24 And the Lord’s servant must not quarrel; instead, he must be kind to everyone, able to teach, not resentful.2:25 Those who oppose him he must gently instruct, in the hope that God will grant them repentance leading them to a knowledge of the truth,

 3. 누가복음서(Luke) 12, 51 53

12:51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12:52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이다. 12:53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12:51 Do you think I came to bring peace on earth? No, I tell you, but division.12:52 From now on there will be five in one family divided against each other,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12:53 They will be divided, father against son and son against father, mother against daughter and daughter against mother, mother-in-law against daughter-in-law and daughter-in-law against mother-in-law.”

 4. 빌립보서(Philippians) 2, 3 4

2:3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2:4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2:3 Do nothing out of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 but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2:4 Each of you should look not only to your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 2:5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5. 로마서(Rome) 14, 1 8

14:1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반가이 맞으십시오. 14:2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밖에는 먹지 않습니다. 14:3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서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가려서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14:4 우리에게 남의 종을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까? 그가 서거나 넘어지거나, 그것은 그의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는 그를 서 있게 하실 힘이 있으시니 그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4:5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날을 특별히 더 좋은 날로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이나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각각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4:6 어떤 날을 따로 정해서 지키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가려서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그 역시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14:7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14: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14:1 Accept him whose faith is weak, without passing judgment on disputable matters.14:2 One man’s faith allows him to eat everything, but another man, whose faith is weak, eats only vegetables.14:3 The man who eats everything must not look down on him who does not, and the man who does not eat everything must not condemn the man who does, for God has accepted him.14:4 Who are you to judge someone else’s servant? To his own master he stands or falls. And he will stand, for the Lord is able to make him stand.14:5 One man considers one day more sacred than another; another man considers every day alike. Each one should be fully convinced in his own mind.14:6 He who regards one day as special, does so to the Lord. He who eats meat, eats to the Lord, for he gives thanks to God; and he who abstains, does so to the Lord and gives thanks to God.14:7 For none of us lives to himself alone and none of us dies to himself alone.14:8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4) <2018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일정> 전체 일정(1) 교직자 수련회 일정 (Clergy Retreat Program): 2018727() ~ 28()

 

 <2018 7 27일 금요일 (Friday, July 27th)>

  11:30am                원다르마센터 도착 (Clergy’s Arrival at Won Dharma Center)

  12:00pm 2:00pm  점심공양 (Lunch)

  2:00pm 2:30pm    여는 시간 (Orientation) – 김동균목사

  2:30pm 3:00pm    태극선 (Taichi Zen) – 인도: 원대선(Dathane Turner) 교무님

  3:00pm 5:00pm    교직자들 개인의 “타인과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 하는가”에 관한 담화 I

                             (Dharma & Logos Talk I on the “Personal Experience of Understanding to  the Difference of Others”)

  5:00pm 7:00pm    저녁공양 (Dinner)  

  7:00pm 8:00pm    좌선(Sitting Zen) – 인도: 도암스님

  8:00pm 10:00pm   ‘타인과의 다름’에 대한 각 종교의 관점과 가르침에 관한 담화 II

                              (Dharma & Logos Talk II on the “Difference of Others” in the Scriptures)

  10:00pm                고요한 밤으로

<2018 7 28일 토요일(Saturday, July 28th)> 

 8:00am 9:30am  아침 공양 (Breakfast)

  9:30am 11:00am   개인 좌선, 와선, 행선 수행

 

<2018 여름 이웃종교 연합수련회> 사진 모음 URL (Dropbox)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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